가치있는 유일한 일의 재구성

AI 행위자 시대에 교육은 어디에 서 있을까요

가치있는 유일한 일의 재구성
Kathryn Conrad / https://betterimagesofai.org /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교양을 추구하던 2세기의 누군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가치있는 유일한 일은 교육이다. 그 외의 모든 재산은 인간적이고 작으며 노력하여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
귀족이라는 타이틀은 고대인들의 유물이다. 부(富)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운명의 선물이다. 영예는 불완전하다. 아름다움은 순간적이며 육체는 불안정하다. 육체는 질병과 노화에 스러질 수밖에 없다.
오직 교육만이 영원하고 성스러운 것이다.
지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회춘하면서 과거의 지혜에 새로운 것을 더해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폭풍우 같은 전쟁도 누군가의 앎을 빼앗지는 못한다.”

—이레네 바예호, <갈대 속의 영원>(El Infjinito en un Junco)

💡
오늘자 뉴스레터는 AI 윤리 북클럽 멤버 기고로 전합니다.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6년 6월 4주
by 🧑🏻‍🎨케빈

목차
1. 배우고 생각할 필요에 대해
2.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곳이었을까
3. 동시대 교육은 어디에 서야 할까

배우고 생각할 필요에 대해

Daniela Zampieri / https://betterimagesofai.org /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 유네스코 꾸리에(UNESCO Courier) 매거진의 올해 2분기 제목은 도발적입니다. "Artifical Intelligence: Do we still need to think". AI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필요가 남아 있냐는 것이죠.
  • 인류는 망각에 맞서 일찍이 '문자'를 치료약으로 삼았는데, 한때 신성한 기억력을 모독하는 '독'으로 취급받던 문자는 세대를 건너며 지성의 탯줄이 되었고, 그 이후의 기술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표현을 빌리면) 독과 약을 함께 지닌 파르마콘이 되었습니다. 글쓰기를 경계한 소크라테스, 책을 의심한 루소처럼 기술이 배움을 앗아갈 거라는 예언이 늘 반복된 까닭이지요.
  • 이번 꾸리에 매거진에 실린 웨인 홈스(Wayne Holmes)의 글은 생성형 AI가 에세이를 '쓰고', 코드를 '짜는' 시대에 이 질문이 가장 날카롭게 되돌아왔다고 말합니다. 홈스의 글에서 인용한 OECD(2026)세계은행(2025)의 보고서는 교사를 잡무에서 해방하고, 진정한 학습의 개인화가 가능해질 거로 전망하며 새로운 파르마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죠. 하지만 홈스는 작금에 떠오르는 현상들을 톺아보며 다른 관점을 취합니다.
  • 2024년 튀르키예의 약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ChatGPT를 쓴 학생들은 도구가 있을 때만 성적이 올랐고, 접근이 끊기자, 애초에 써본 적 없는 학생들보다 더 못했습니다. 홈스는 이를 "인지적 목발(cognitive crutch)"이라 부르며, MIT의 2025년 뇌파(EEG) 연구에서도 생성형 AI 사용 집단이 "모든 수준에서 더 나쁜 수행을 보였다(performed worse ... at all levels)"라고 전합니다. 장기 기억과 인지 능력이 함께 가라앉는 "인지적 위축(cognitive atrophy)"의 신호라는 것이죠.
  • 교육 현장의 불안도 데이터로 드러납니다.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이 인용한 2026년 조사에서 대학 강사의 90%가 AI가 학생의 비판적 사고를 약화할 것이라 답했고, 95%는 과의존을 우려했습니다. 스웨덴은 1994년부터 교실에 디지털 스크린을 들였지만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성적이 나아지지 않자 2024년부터 종이 교과서에 보조금을 주며 방향을 틀었고, 한국 역시 작년 1학기에 도입한 AI 디지털교과서를 한 학기 만에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했습니다.
  • 기술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줄 때, 우리로부터 무엇을 가져가는지에 대한 질문은 아직도 닫히지 않았습니다.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이 <테크노폴리>(Technopoly)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기술은 거래여서, 편리의 대가로 우리가 내어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더 빠르고 쉬운 답"을 손에 넣은 학생이 정작 그 답에 도달하는 힘을 잃는다면, 우리가 효율이라 불러온 것 뒤에 숨어 있는 건 무엇일까요.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곳이었을까

Yasmin Dwiputri & Data Hazards Project / https://betterimagesofai.org /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 배움이 정말 교육의 전부였을까요. 홈스가 인용한 교육철학자 게르트 비에스타(Gert Biesta)는 교육에 세 가지 기능이 겹쳐 있다고 봅니다. 지식과 기술을 얻는 '자격화(qualification)',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사회화(socialization)',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삶에 책임지는 주체가 되는 '주체화(subjectification)'인데요. AI 튜터는 거의 언제나 첫 번째에만 관여할 뿐, 나머지 둘에는 좀처럼 닿지 못합니다.
  • 아르헨티나 교사들의 증언은 이 빈틈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사 세실리아 베르디키오(Cecilia Verdicchio)는 "어떤 로봇이나 AI도 아이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어깨에 손을 얹고 '널 믿는다'라고 말해 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같은 글에서 또 다른 교사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법은 오직 사람만이 가르칠 수 있다"라고 덧붙이지요.
  • 배움이 곧 관계인 곳에서는 이 더 분명해집니다.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케냐, 나미비아, 남아공 등지)에서는 어른과 마을 구성원이 교실에 함께 들어와 속담과 구술 전통을 전하기도 하는데, 이는 - AI 튜터가 제공하지 못하는 - 사회화 과정에 해당합니다. 같은 글에서 나이지리아 자리아(Zaria) 지방의 이야기도 다루는데요. 자리아의 종교 교육자들은 AI에 키르키(Kirki, 하우사(Hausa) 윤리에서 말하는 도덕적 행위 주체성(Moral Agency))가 없어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 한국에서도 서울시교육청이 '정답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학생의 비판적 사고를 보는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하겠다고 밝히는 등, 평가의 무게중심을 결과물에서 사고의 과정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결과에서 과정으로의 전환 - 즉 다른 사람과 머리를 맞대는 '사회화'나 사고의 외주화에 맞서는 '주체화' 과정에 무게추를 두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AI의 맹점으로 여겨지는 아프리카의 전통에 눈길을 두도록 만듭니다.
  • AI가 자격화의 기능을 빠르게 흡수할수록,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말한 복수성(plurality), 곧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자리로서의 교육이지요. 또한 어깨에 얹는 손과 챗봇의 즉각적인 피드백 사이에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학교가 가르쳐온 건 정보뿐 아니라, 타인과 함께 정보를 의미로 바꾸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시대 교육은 어디에 서야 할까

Anton Grabolle / https://betterimagesofai.org /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 답을 주지 않는 AI가 단서가 됩니다. 중국 구이저우(Guizhou)의 홍옌(Hongyan) 프로젝트는 학생이 막혔을 때 해답 대신 질문을 던지도록 설계됐는데요. "어느 지점에서 길이 흐릿해졌나요?" 같은 물음으로 학생이 자기 사고 과정을 스스로 해체하게 합니다. 설계자들은 "AI는 교사의 대체물이 아니라 교사의 손길을 넓히는 증폭기"라고 말하지요.
  • 규칙 자체를 다시 짜는 시도도 있습니다. 2025년 AI를 정규 과목으로 만든 아랍에미리트(UAE)의 한 학교는 신호등 체계를 씁니다. 빨강은 AI 없이 스스로, 노랑은 교사 지도 아래, 초록은 감독된 탐색을 뜻하는데요. 뉴질랜드의 한 언어 교사는 "먼저 초안을 쓰고 나서 AI에 첨삭을 구하라"는 규칙만으로 '복사·붙여넣기'를 호기심과 비판으로 바꿨다고 이야기합니다.
  • 핵심은 마찰을 없애지 않는 설계입니다. AI 교육 기업가 프리야 라카니(Priya Lakhani)는 테드(TED) 강연에서 쉽고 빠른 답을 진짜 배움과 혼동하지 말라며, 도전과 정신적 노력이야말로 전문성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한편 인도에서는 Gen Z 부모의 52%가 육아 조언에서 검색 엔진보다 AI를 더 신뢰한다는데, 효율을 좇다 비효율의 가치를 놓치는 일은 교실 밖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겠지요. 인도의 사례는 결국 마찰을 보존하는 책무는 교실 안의 아이들이 아니라, 교실 밖의 어른들부터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신호로 읽히기도 합니다.
  • 2세기의 누군가는 "오직 교육만이 영원하고 성스럽다"라고 적었습니다. AI가 우리의 자격화 미션을 침식할수록, 바예호가 옮긴 그 문장은 빛이 바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남는 것은 사회화와 주체화, 곧 함께 살아가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거든요. 앞으로 '가치있는 유일한 일'이 마주해야 할 지난한 변화의 여정에서, 그 무엇보다도 사회화와 주체화의 준칙이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