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나
황쎄오의 알현식, AI 광기에서 빠져나오는 길 찾기
개인의 내면에 있는 '열망'과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모델'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한다. 순응은 개인이 내면의 열망을 잠재우고 외부세계의 모델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너게임, 티머시 골웨이 지음, 최명돈 역 <1984>
황쎄오의 알현식
by 🎶소소
이번 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한국 방문 소식, 한 번쯤 들어보셨나요? 언론들이 앞다퉈 젠슨 황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하는 덕분에 저도 매일 그의 저녁 메뉴까지 알게 되었는데요. 한국의 대기업 총수들이 모두 나와 그를 맞이하고, 그와 만난다는 회사마다 주가가 올랐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피하지도 않고 나와서 인터뷰하고, 사인도 해주고, 기념품도 나눠주더라고요.

위의 그림 속에서는 한 사업가 앞에 귀족들이 줄지어 허리를 굽힙니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죠. 그런데 이건 어제의 서울이 아니라 1845년 런던의 풍자만평입니다. 주인공은 '철도왕' 조지 허드슨. 철도라는 신기술이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주리라 믿었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철도주가 전체 시총의 65%를 차지하고, 2년 만에 평균 106%가 올랐다고 하니 지금의 AI 반도체주 같은 양상이죠.
180년 전 런던의 풍경이 오늘 서울에서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답의 일부는 주식 계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일 년간의 KOSPI 지수 급등은 사실상 AI 발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기인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엔비디아 CEO의 한국 방문은 일반인들에게도 "내 주식이 내일 오를까"로 발화되는 것입니다. 그의 방문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기회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몇 년간 나스닥 지수 상승을 이끌었던 빅테크의 본거지 미국은 어떨까요? 아이러니하게도 AI 개발의 중심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 밸리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지난 5년간 앤트로픽, 오픈AI, 엔비디아의 직원과 창업자 약 1만 명은 2천만 달러(약 300억 원)가 넘는 부를 손에 쥐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현재 연봉은 괜찮더라도 평생 그 정도의 부를 얻을 수 없다는 패배감을 느끼고 있다고요. “2년 전에 앤트로픽에 입사했더라면 지금쯤 은퇴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과 ‘영원한 하층민(permanent underclass)’라는 말이 팽배하다고 합니다. “SK 하이닉스 갔더라면”하는 이야기를 우리만 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미국에서의 더 큰 문제는 해고가 한창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기술이 더 이상 쓸모없어졌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깊은 불안감도 만연하다고 합니다. 스탠퍼드 연구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높은 직무에서 22~25세 청년 고용이 2022년 말 이후 13% 줄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20% 감소했고요. 2025년 미국에서 AI를 직접 사유로 든 해고가 5만 5천 건. 2년 전의 12배입니다. 미국 성인의 절반은 일상생활에서 AI 사용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기대감보다는 우려를 훨씬 더 크다고 답했으며, 기대가 더 크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AI를 직접 사유로 든 대규모 해고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AI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충격이 해고가 아니라 다른 얼굴로 온다고 말합니다. 반복 업무가 AI로 넘어가면 기업은 기존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며 신규 채용부터 줄입니다. 기존 일자리가 아니라 미래 일자리를 공격하는 방식이죠. 게다가 가장 빠르게 대체되는 곳은 여성, 비정규직, 사무보조 같은 저임금 직군입니다. 이들은 일자리를 잃어도 더 나쁜 일자리로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통계에 잘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청년에게는 진입로가 닫히고, 약한 고리에서는 일자리의 질이 조용히 무너지는 중입니다.
대 AI 시대, AI를 바라보는 미국과 한국의 감정이 다른 이유는 아마도 사회적 비용이 청구되는 시점의 차이겠죠. 미국은 이미 AI 도입으로 인한 비용이 청구되고 있지만,아직 한국에서는 연일 오르는 주가만 보입니다. 그렇지만 AI 비용의 청구서는 안 오는 게 아니라 늦게 오는 거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AI 기업이든 뭐든 주가가 계속 올라주면 좋은 것 아닌가요? 앞서 이야기했던 철도주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철도주는 계속해서 올랐을까요? 예상하셨겠지만 폭락이 왔습니다. 10% 증거금만 내고 주식을 매수했던 투자자들은 일제히 마진콜을 받고 파산했습니다. 150년 뒤 캘리포니아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광케이블 회사 글로벌 크로싱은 흑자를 한 번도 못 낸 채 시총 470억 달러를 찍었고 결국 파산했습니다.

다행인 건 광기가 깔아 둔 인프라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건 그 철도 위에서였고, 오늘의 인터넷도 글로벌 크로싱이 남긴 광케이블 위에 세워졌습니다. 경제학자 카를로타 페레스의 말처럼 광기와 인프라는 한 몸이고, 진짜 번영은 거품이 터진 다음에 옵니다. 다만 잔인한 비대칭이 있습니다. 시스템은 광기의 덕을 보지만, 정점에서 레버리지를 끌어 쓴 개인은 늘 파산했다는 것. 샘 올트먼조차 "누군가는 천문학적인 돈을 잃을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부의 사다리'라는 서사가 개인에게 약속하는 자리는, 역사적으로 보면 수혜자의 자리가 아니라 광기의 연료를 대는 자리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 광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역설적이지만 AI를 멀리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AI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신도 아니고, 내 일자리를 끝장낼 괴물도 아닌, 그냥 잘 쓰면 유용한 도구 정도로요. 동시에 그 도구가 가져올 사회적 부작용을 막을 방법도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생성형 AI 사용률은 37.1%로 지난 6개월간 세계 최고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AI 사랑이 전부 주식 때문은 아닐 겁니다. 기술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새로운 것을 만드는 즐거움도 분명 섞여 있겠죠. 어쩌면 우리는 이미 도구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셈입니다.
철도의 광기도, 광통신망의 광기도 그렇게 무너지는 동안 다음 시대를 황금기로 만든 건 알현의 줄에 섰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광기가 깔아 둔 인프라 위를 차분히 걸어 들어간 사람들이었죠. 오늘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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