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규제 완화는 시장 자유화보다는 기업과 국가의 결속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규제 완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부분의 교과서들이 지도자, 그것도 국가적 차원의 지도자들만을 지나치게 부각한다.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전혀 배우지 못한다. ... 민주적 제도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것은 바로 우리와 같은 일반 시민들이다.
— 엘리노어 오스트롬의 1997년 강연 중 일부
목차
1. 규제 완화라는 신화: AI 기업을 위한 전략적 재규제

규제 완화라는 신화: AI 기업을 위한 전략적 재규제

by 🍊산디

“규제 혁파(!)”, “규제 프리(!!)”라고도 불리는 “규제 완화”는 대통령 선거 단골 소재 중 하나입니다.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되고 AI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열쇠로 인식되는 현 시점에서, 규제 완화는 “AI 생태계 조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 수단인 것처럼 회자됩니다.

이번 대선 역시 AI 규제보다는 AI 규제 완화 정책이 더 이목을 끕니다. 정당/후보별 10대 공약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규제 특례를 통한 AI 융복합 산업 활성화를, 김문수 후보는 데이터 규제 혁파와 기준국가제 적용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준석 후보는 ‘압도적인 규제 혁파’를 내세워 규제기준국가제, 규제심판원, 규제 샌드박스 특례기간 확대, 사업자단체에게 집단으로 규제기준국가제 또는 특례 신청할 수 있는 자격 부여 등 구체적인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네요.

대체 규제 완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규제를 완화하면 AI 생태계는 조성될 수 있는 걸까요? AI와 관련된 규제는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도 않았으며, 기존 법체계가 AI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할지라도 정부는 지속적으로 규제 개혁추진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계속해서 규제로 인해 자유로운 혁신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한 편에서는 AI 안전을 위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외치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규제 때문에 못 살겠다니,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규제 완화는 자주 자유화(liberalization)와 혼용됩니다. 자유화의 이상은 국가의 규제를 시장에 대한 간섭이라고 보고, 시장 행위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할 때에 더 큰 사회적 효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제하죠. 자유화는 사적 행위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제거함으로써 시장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신화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추진된 규제 완화가 기대했던 효과, 즉 “자유롭고 혁신적인 생태계”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규제는 국가가 시장과 관계하는 필수적인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이 사라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규제 완화는 ‘자유로운 시장’을 만든다기 보다는, 규제를 정비하는 재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규제가 시장 행위자들의 요구에 반응하여, 기술 진보에 발맞추어, 국제적 기준에 조응하며 세련되게 모습을 바꾸는 것이지요.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와 시장 간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기업도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 “규제 철폐”된 시장을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기업의 요구 사항은 글로벌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기업은 전략적으로 국내 기업에게 혜택을 주고, 외국 국적의 회사가 자국에서 누릴 수 있는 상대적 우위를 제거하며, 국내 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국부가 나서서 AI 기업에 투자하고, AI 기술 개발에 필요한 생산 요소를 마련하고, AI 서비스를 도입하고, AI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러한 요청을 가로막는 규제들만 “규제 완화”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이는 규제 완화가 아닙니다.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적인 재규제이지요.

AI 생태계 조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규제 완화는 시장 자유화보다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재량과 통제, 기업과 국가의 결속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국가도, 기업도 이를 원하는 듯 하네요. 과학기술 생태계에 새로운 규칙이 쓰여야 한다면, 대선을 앞둔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 새로운 규칙이 대체 무엇인지 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기업이 어떤 수혜를 받으며 왜 이러한 수혜가 필요한가요? 국가와 기업의 결속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나요? 규제 완화로 인해 이해관계자의 권리가 침해되지는 않나요? 규제 완화 논의가 정말 중요한 질문들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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