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테크 독과점과 연구자들
지식 생산을 독과점하는 기업들 그리고 연구의 미래
정답을 갖고 있는 많은 책들과 달리 삶에는 답이 없음을 이야기함으로써, 우리가 어떠한 길을 가든 손가락질하지 않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뛰어난 삶과 보잘것없는 삶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수영, '주저함의 자유'에서, <나는 칠성 슈퍼를 보았다>
1. 테크 기업들이 진짜로 독점하고 있는 것
2. AI시대의 연구자들
테크 기업들이 진짜로 독점하고 있는 것
by 🥨채원
몇 주 전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에서 열린 ‘테크 기업들의 독점’ 특강에 다녀왔습니다. UCL의 세실리아 리캡 교수와의 대담으로 이루어진 전체 팟캐스트는 여기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테크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몇 가지 꼭지를 소개합니다.

클라우드 시장에서의 독과점 문제
리캡 교수가 제기하는 큰 주장 중 하나는 클라우드 시장의 독과점 문제입니다. 그는 클라우드 시장이 전통적인 경제학에서의 시장과 다른 점을 지적하며, 클라우드 시장은 마치 “물건이 하나의 가게에서 생산되고, 판매 및 구매되고, 또 소비되는” 구조적 특징 가지고 있다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 시장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아마존이라는 세 개의 기업이 전 세계 클라우드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러티브와 지식 생산의 독점
리캡 교수의 주요 비판점은 테크 기업이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 이상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들 기업이 전통적 재화를 소유하고 생산하는 개념을 넘어 기술을 둘러싼 내러티브의 생산과 지식 생산까지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최근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기관의 예산 삭감은 결국 많은 연구기관이 사기업의 자본에 의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합니다.
규제 너머의 대안적 상상력
그렇다면 이러한 테크 기업들의 광범위한 독과점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리캡 교수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영역에서 기술에 투자하고 또 기술을 소비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로서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또 필요로 하는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기술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기술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AI시대의 연구자들
by 🎶소소
지난 주말 ‘인공지능 시대, 사회와 윤리를 다시 생각한다’는 제목의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제목처럼 AI가 사회와 윤리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수 있는 발표가 여럿 있었는데, 오늘은 그 중 인상 깊었던 발표 내용 한 가지를 공유합니다.
여러분은 학생들이 학교 과제를 하거나 시험을 볼 때 AI를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성형 AI 등장 초반에는 많은 학교에서 AI 활용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AI 활용을 막기보다는 표절, 부정행위 등의 부작용 사례를 알리고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 과제, 시험은 물론 논문 작성까지 AI를 활용하지 않는 활동이 없을 정도입니다. 선생님들도 AI를 활용하여 쉽게 답할 수 있는 시험 문제가 아니라 학생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평가 형식 자체를 변경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한 연구자들의 상황은 어떨까요? 오늘 소개할 연구는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사회과학 연구자들 17명의 인터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AI 활용이 사회과학연구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합니다.

- AI는 학계를 더 평등하게 만드는가, 혹은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심화하는가? (Equalizer Narrative)
- 일부 연구자들은 AI를 학문적 평등화의 도구로 봅니다. 한 달에 한 번 지도교수를 만나기도 힘든 대학원생에게 AI 활용 역량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모두에게 동등해 보이는 AI 활용 기회가 사실은 기존의 불평등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AI 서비스는 영어로 질문했을 때 더 좋은 답변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AI가 영어 번역을 쉽게 도와주기는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잘못된 문장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죠. AI를 사용하다 보면 쉽게 의존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기술 역량 약화(self-de-skilling)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당장의 비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높은 할증이 붙는 것과 같달까요.
- AI는 개인의 역량 증진 도구인가, 혹은 일부의 특권을 강화하는 수단인가? (Meritocracy Narrative)
- 어떤 연구자들은 AI를 ‘하나의 도구’로 생각합니다. R이나 Python 같은 통계 도구를 사용하는 것처럼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개인의 능력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한 편으로는 AI의 활용 역량을 ‘능력’으로 인정하기엔 활용의 혜택이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점을 지적합니다. 특히, AI가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양적 연구를 빠르게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데 반해 좋은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질적 연구자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오픈AI에서 최신의 고성능 추론 서비스에 비싼 구독료를 책정한 것과 같은 AI 접근성의 경제적 장벽이 기존의 특권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AI는 학문 커뮤니티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Community Narrative)
- AI가 학문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긍정적으로는 AI가 쉽게 할 수 있는 기존의 무의미한 연구나 논문의 의례적 요소를 줄여 새로운 방식의 지식 공유를 촉진해나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 그러나 AI로 인해 쏟아지는 연구 결과를 과연 학계가 제대로 소화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었습니다. 학문 공동체가 AI의 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요즘의 10대 청소년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해 스마트폰과 본인을 거의 동일 시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통제하는 행위가 어른들의 생각보다 더 큰 폭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하네요. 이미 자신과 AI를 동일시해서 AI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구에도 AI 활용이 당연해진 시대, AI를 윤리적으로 활용하며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연구 윤리는 ‘거짓말 하지 않고, 표절하지 않고,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정도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의 연구 윤리는 AI의 기술적 기능부터 학계의 제도적 관행, 커뮤니티의 참여, 행정 비용 등의 사회적 영향까지 포괄해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질문을 남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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