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보다가 생각한 AI윤리

교황청의 'AI와 인간 지능의 관계에 대한 노트'에 덧붙이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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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보다가 생각한 AI윤리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나요 (...) 소스: 직접 찍은 사진
문제는 근대 과학적 세계관의 '진실'이 수학 공식으로 시연되거나 기술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더이상 일상 속 언어나 생각으로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축구 보다가 생각한 AI 윤리

by 💂🏻죠셉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 레터는, 제 기억이 맞다면 윤리레터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단어인데, ‘축구’ 이야기로 시작해보려합니다. 

저는 저와 조금만 가까운 지인이라면 모두 알만한 축구 마니아인데요. 8~9시간 시차가 있는 영국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에 벌떡 일어날 뿐만 아니라 그 경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각종 전술 분석과 선수들 간의 얽히고설킨 히스토리까지 꼼꼼히 챙겨보곤 합니다.

2003년부터 축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보니 축구팀 서포팅의 큰 재미 중 하나는 새로운 선수의 영입 혹은 기존 선수의 방출 같습니다. 아무리 축구를 재밌게 잘해도 같은 선수들이 계속 뛰면 서포터들도 지루해하기에 팬 관리 차원에서라도 각 구단이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과업인데요. 선수 판매 및 영입이 가능해지는 매년 1월과 6-8월이 되면 각종 축구 커뮤니티 댓글 창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립니다. 가령, ‘선수 A를 1000억에 팔고, 선수 B는 500억에 영입하고, 선수 C는 300억에 사고…’ 대략 공개된 선수들 몸값을 가지고 저런 식으로 나름대로 계산을 해보며 이적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각자 예상해 보는 거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댓글들에 반응으로 종종 달리는 대댓글이 있습니다.

“FM 좀 그만하는 게 좋을 듯.”
(*<Football Manager>의 약자로, 축구 감독이 되어 한 구단을 운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사실 현실에서 선수를 영입한다는 건 굉장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돈 문제뿐만 아니라 외국 선수의 경우 언어와 문화 적응 문제,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 선수의 성향 등등 고려할 요소가 끝이 없죠. 말하자면 저렇게 복잡한 문제를 게임에서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한 일처럼 쉽게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핀잔인 겁니다. 복잡한 맥락의 집합체인 인간 축구 선수를 데이터 포인트로 환원시키는 경향도 그렇지만,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가상과 현실을 혼동한 게 그 이유라는 반응이 어쩐지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더라고요.

문제의 게임(?) - 선수 영입부터 방출, 선수단 관리까지 감독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소스: 풋볼 매니저 웹사이트

이런 인식의 변화는 축구 경기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AI 스타트업이 있을 정도로 데이터 사이언스가 깊숙이 도입된 현대 축구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걸로 보입니다. 과거 축구에는 개성 있고 화려한 플레이로 스포츠뉴스의 한 꼭지를 책임지던 소위 ‘판타지 스타’라 불리는 선수들이 종종 있었는데요. 언제부턴가 이런 선수들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훌륭한 개인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야 여전히 많지만, 어디까지나 잘 짜인 시스템 속의 부품으로서 기능하는 것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경기 중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개성의 표출보다 주어진 역할의 충실한 수행이 우선이 됩니다. 중요한 건 선수 하나가 빠져도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고, 이를 위해 현대 축구 선수의 기량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지표에 의해 평가되죠 (실제로 2010년 무렵부터 가장 많은 우승을 거머쥔 펩 과르디올라가 바로 이런 통제광스러운 축구 철학을 가진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건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측정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보이는 경향입니다.

작은 것들의 윤리

지난 1월 28일, 교황청에서 AI 윤리를 주제로 한 긴 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AI와 인간 지능의 관계에 대한 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은 총 117개의 문단을 통해 AI가 무엇이며, 이 기술이 바람직하게 발전하기 위해 윤리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기술 개발을 하며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AI 기술을 인류의 유익을 위해 수용하되,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을 위해 사용되기 위해선 책임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주 새롭진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 존엄(dignity)’과 ‘인간을 위한’이란 표현은 눈에 띕니다. 

'Antiqua et Nova’ 를 설명하는 폴 타이 (Paul Tighe) 주교 소스: 바티칸 뉴스

인간을 숫자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지적은 지속적으로 있었습니다. <인간의 조건>에서 한나 아렌트가 그에 대해 쓴 바 있고, 교황청의 가이드라인 또한 인간의 지성과 감정 등은 데이터로 축소될 수 없으며, 개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환원주의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AI 윤리의 세 층위를 소개하며 지난 레터에서도 썼듯, 가이드라인은 윤리의 큰 틀을 제시해 줄 수 있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도 윤리 층위와 개인 층위는 서로를 보완합니다. 그렇다면 가이드라인이라는 큰 틀에 듬성듬성 난 빈틈을 개별 사용자가 일상의 구체성으로 메꿈으로서 인간을 위한 AI 기술, 더 윤리적인 AI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앞서 길게 쓴 현대 축구의 풍경과 관련, 저의 개인적 경험을 떠올린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축구와 얽힌 많은 것들이 숫자화됐지만 저에겐 축구를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 있거든요. 가령, 경기 중 시도한 플레이가 실패했는데 다음 기회가 찾아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같은 팀 동료가 골을 넣었을 때는 어떤 바디랭귀지를 쓰는지, 동료 선수들과 얼마나 자주 소통하는지 등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위주로 경기를 감상하는 건데요. 이런 경험이 축적되며 발달하는 나만의 직관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균 몇 골을 넣는지, 몇 킬로를 뛰었는지 등 지표 너머의 것을 드러내 주는 다양한 찰나의 순간이 모여 축구의 의미가 한층 풍성해집니다. 써놓고 보니 글로 쓰기엔 너무 소소한 예시네요. 한편으로는 이렇듯 별거 아닌 관점의 전환으로 작은 AI 윤리가 실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딥시크와 스타게이트와 같은 거대한 단어들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요즘, 빽빽한 가이드라인만큼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동료 시민에게 영감을 줄, 이런 소소한 예시의 공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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