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낙관 대신
기술과 권력이 미래를 말하는 방식에 대해
세계경제포럼에서 만난 힘의 논리
by 🎶소소
세계의 리더들이 모여 글로벌 문제를 논의한다는 세계경제포럼의 올해 공식 주제는 ‘대화의 정신’이었지만, 그 현장은 ‘힘의 논리’로 채워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손에 넣기 위해 무력 사용의 가능성까지 시사했고, 유럽을 향해 관세 협박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저에게 섬뜩하게 다가온 것은, 기술과 권력을 쥔 이들이 내뱉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였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블랙록 CEO와의 대담에서 AI와 로봇이 가난을 해결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높은 생활 수준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I가 인류에 ‘지속가능한 풍요’를 가져올 유일한 길이라면서요. 그러면서 대담 마지막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비관주의자로 살아서 맞히는 것보다, 낙관주의자로 살다가 틀리는 것이 삶의 질 측면에서 훨씬 낫다”
X에서 성적 이미지 생성 AI 기능을 자유롭게 풀기로 결정했을 때, 그가 생각한 ‘낙관적인 인류의 미래’란 무엇이었을까요? 그 ‘낙관적 미래’ 안에 성착취물의 온상이 된 X의 현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술 지상주의자들에게 부작용이란 '나중에 해결하면 되는 사소한 버그'일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성착취물은 일상의 사람들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통입니다. 미래의 풍요를 담보로 현재의 비극을 정당화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낙관의 실체일까요?

이런 태도는 트럼프의 화법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트럼프는 이번 연설에서 사실이 아닌 말을 너무 많이해서 BBC가 팩트체크 자료를 발표할 정도였지만, 제게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지난 12개월 동안 해고된 27만 명의 연방 공무원들이 처음에는 저를 미워했지만, 이제는 저를 사랑합니다. 그들은 민간 부문으로 이직해서 두 세배의 연봉을 받고 있으니까요."
...이런 게 낙관주의일까요? 그들의 낙관 속에서 누군가의 생존권을 흔든 결정은 ‘모두에게 좋은 일’로 쉽게 둔갑됩니다. 이는 AI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천만 명을 향해 테크 기업들이 던질 미래의 예고편 같기도 합니다. "더 효율적인 세상이 올 것이니 당신들의 희생은 값진 것"이라는 식의 논리죠. 누군가의 생존권을 박탈하면서 그것을 ‘진보’나 ‘전환’으로 포장하는 것, 이것이 권력과 기술이 결탁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 아닐까요.
이처럼 기술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장밋빛 미래'를 호언장담할 때,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는 강대국들이 규칙과 가치를 버리고 힘의 논리로 회귀하며는 정글이 되어가는 세계를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식탁에 앉지 못한다면, 우리는 메뉴판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캐나다와 같은 중진국들이 '인권, 지속가능성, 주권 존중'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며 강력하게 연대해야만, 강대국과 기술 권력이 설계한 식탁에서 '메뉴(소모품)'로 전락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세상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맞설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AI 윤리레터가 쓰는 이야기는 아마 일론 머스크가 말하는 낙관주의자적 태도와는 많이 다를겁니다. 오히려 비관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기술이 가져다 준다는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를 마주하자고 이야기하죠. 저 역시 세상을 낙관적으로만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해결될 것이라 믿어버리면 고민은 사라지고 삶은 즐거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불편한 시선은 비관적 태도에 머물지 않습니다. 대신 지키고 싶은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이야기합니다. "다 잘 될 거야"라는 무책임한 낙관 대신,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를 이야기하고 연대하며 바라는 세상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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