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건국 설화: 자유의 이름으로 세탁된 자본

자유를 내세워 쌓아 올린 텔레그램의 성과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착취의 구조 위에 쌓아 올린, 철저히 체계적인 억압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건국 설화: 자유의 이름으로 세탁된 자본
가정, 일터, 시장, 공적 영역, 몸 자체, 이 모든 것이 거의 무한하게 다형적으로 분산되고 인터페이스로 접합될 수 있으며 이 과정은 여성과 다른 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사람마다 대단히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국제적 저항 운동을 만들어내기가 무척 힘들어지는 동시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와 같은 운동이 절실하다.
—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목차
1. 텔레그램 건국 설화: 자유의 이름으로 세탁된 자본
💡
소식
📢 AI 윤리 교육 자료집 제작 캠페인: 기술의 이면을 보는 힘

AI 윤리 레터와 빠띠가 공동주최한 "딥페이크 성범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feat. 캠페이너 인생게임)" 행사 관련 후속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AI 기술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함께 고민하는 AI 윤리 교육을 위한 자료집 제작을 위해 서명을 받는 캠페인을 개설했는데요.

교육 자료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1000명의 지지 서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문제를 비롯한 AI 윤리 문제가 교육 현장에서 보다 활발히 논의될 수 있도록 주변에 널리 알려주세요. 

AI 윤리 교육 자료는 2024년 12월 중 캠페인 서명 참여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 예정입니다. 관련 소식을 받아보실 분은 링크의 “서명하기”에 참여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텔레그램 건국 설화: 자유의 이름으로 세탁된 자본

by 🍊산디

텔레그렘은 매혹적인 건국설화를 갖고 있습니다. 기개와 시련, 용기, 망명, 이상향을 모두 담고 있죠. 설화는 러시아에서 시작됩니다. 미래에 텔레그램을 설립하게 되는 청년 파벨 두로프(Pavel Durov)는 2007년, 브콘탁테(VKontakte)를 창업합니다. 사실상 페이스북을 모방한 서비스였죠. 브콘탁테는 단숨에 러시아 최대 규모 소셜 네트워크로 발돋움합니다.

출처: 파벨 두로프, TecjhCrunch,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2012년 초, 위기가 닥칩니다. 러시아에서 반 푸틴 운동이 벌어진 것이죠. 두로프는 시위 참여자들이 브콘탁테를 활용해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항한 시위를 조직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았고, 반-푸틴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블로그를 폐쇄하라는 요구에도 불응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친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반대 혁명(유로마이단 혁명) 참가자 정보를 제공하라는 러시아 당국의 요청도 거부합니다.

일련의 결정으로 파벨 두로프는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동시에 시련 또한 시작됩니다. 크렘린과 연관되어 있는 인사들이 브콘탁테의 경영권을 조금씩 잠식해오기 시작한 것이죠. 2014년, 그는 만우절 농담이라며 사의를 밝혔고, 이후 사의를 철회했으나, 만우절 농담은 현실이 되어 그는 경영자로서의 지위를 잃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러시아를 떠나 서방세계에 입성합니다. 두로프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당국에 협조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이후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견딜 수 없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자들로부터 자신이 받은 박해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나아가 “불행히도, 그 나라(러시아)는 현재 인터넷 사업과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의 비전을 드높이죠. 당시 그의 용기는 ‘깨끗한 양심’이라 불리며 큰 울림을 전했습니다.

이런 울림은 2013년 감시 자본주의의 속내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내부고발을 배경으로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구글 등 빅테크가 미국의 적대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우방국, 심지어 자국민까지도 포함한 전세계 시민을 대상으로 통신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를 미국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전지구적 충격에 휩싸인 시기였죠.

출처: Unsplashilgmyzin

9.11 테러 이후 반테러리즘에 기댄 감시 국가의 부상과 자본주의의 결탁 속에서 파벨 두로프의 결단은 자유의 등불과 같았습니다. 독일 망명 후 그는 본격적으로 텔레그램을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세계는 그의 다음 도전에 주목했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자유의 공간 텔레그램이 건국됩니다.

이러한 건국 설화를 배경으로 텔레그램은 빠르게 이용자를 모으는 데 성공합니다. 텔레그램은 ‘지구상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라는 아이디어 그 자체였습니다. 두로프는 자유의 선봉에 있는 신비로운 사람이었죠. 실제로 텔레그램은 반체제 인사들이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피난처로 기능합니다. 많은 한국 이용자들도 통신 자유를 위해 텔레그램으로 ‘망명’했죠.

그가 망명길에 떠난지 10년여가 지난 지금, 텔레그램은 딥페이크 성착취물 문제를 증폭하고 해결을 어렵게 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텔레그램이 약속한 ‘통신의 자유’는 비밀 채널에서 아동성착취물(Child Sexual Abuse Material, CSAM)을 비롯한 성착취물의 거래를 사실상 방조했습니다. 스탠포드 인터넷 감시소(Stanford Internet Observatory, SIO)는 텔레그램이 사적 채널을 통해 아동성착취물 거래를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개인 간 통신에 대한 텔레그램의 정책은 다른 빅테크 플랫폼에 비해 너무도 자유로워서, 아동성착취물 유통과 어린이에 대한 성애화, 그루밍 등에 대해 아무런 제재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출처: 스탠포드 인터넷 감시소 보고서 일부 갈무리

텔레그램은 익명성과 보안, 사법 공백을 적극 활용해 수익을 좇는 이용자를 만들어냈습니다. 프랑스 당국은 아동 포르노물 유포, 유해 콘텐츠 방치뿐만 아니라 조직범죄 활동 공모, 마약 밀매 조장 등의 혐의로 두로프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가 권력의 감시에서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이상은 여성 인권을 적극적으로 희롱하는 이용자들의 피난처로 전락했습니다.

혹자는 범죄를 저지른 이용자의 잘못을 텔레그램에게 돌릴 수 없다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통신 자유는 텔레그램이 성장할 수 있는 기폭재이자 수익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텔레그램은 광고 시스템을 도입하고, 활성화된 방의 개설자에게 광고 수익의 50%를 주었습니다. 통신 내용에 대한 규율은 없었습니다. 다국적 해외 사업자로서 국가의 관할권을 교묘히 이용하며 적극적으로 사법 공백을 만들어냈습니다. 두로프는 텔레그램을 통해 20조원이 넘는 부를 얻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부는 자유의 이름으로 세탁되었습니다.

출처: 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일부 갈무리

2018년. 두로프는 인스타그램에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포스팅했습니다. 자유를 구하기 위해 내달리는 백마 탄 왕자가 되고자 했던 텔레그램의 신화는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를 내세워 쌓아 올린 그의 나라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착취의 구조 위에 쌓아 올린, 철저히 체계적인 억압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전세계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에 대한 그의 이상은 무너지고 있고, 무너져야 합니다.

💬
댓글
- (🤔어쪈) 자유라는 가치는 결코 유일하거나 모든 것에 우선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은 문제에 대해 텔레그램과 같은 메신저 또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책임이 언급될 때마다 종종 표현·통신의 자유를 강조하며 사전 검열, 과잉 규제 등을 우려하는 주장을 접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누구를, 또 무엇을 위한 것인지와 함께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이용되거나, 또 다른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는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