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제 로비, 누가 이득을 보는가?
또, 누가 AI를 이야기하나?
효율성은 신뢰의 적이 될 수 있다. 신뢰는 약간의 마찰을 요한다. 시간이 투입[돼]야 하고, 투자와 노력도 필요하다.
—레이첼 보츠먼 (문희경 옮김), <신뢰 이동>
목차
1. 프랑스 AI 스타트업, EU의 뒷통수를 치다?
2. 누가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나?
프랑스 AI 스타트업, EU의 뒷통수를 치다?
by 🤔어쪈
AI 업계에서 새로운 협력 또는 투자 뉴스는 더이상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한지 10년이 지난 현재 둘은 온전한 한 팀이 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MS)가 5년 전 오픈AI에 베팅한 100억 달러는 신의 한수로 불리죠. 이후 여러 빅테크 기업과 AI 스타트업 사이 합종연횡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MS와 한 AI 스타트업이 발표한 협력 소식은 적잖은 사람들의 걱정과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왜일까요?
미스트랄, 프랑스의 거센 북동풍
MS와 손을 맞잡은 곳은 미스트랄 AI (Mistral AI, 이하 미스트랄) 라는 프랑스 기업입니다. 작년 하반기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혜성같이 등장한 곳이죠. 메타가 발표한 라마(Llama) 2가 진짜 오픈소스 모델인지 논쟁이 한창일 때, 그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모델을 연달아 (진짜)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에 힘입어 설립된 지 1년이 채 안된 시점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20억 유로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달성했고, 독일의 알레프 알파(Aleph Alpha)와 함께 유럽 AI 업계 선두 주자로 꼽히고 있죠.
미스트랄은 MS와의 협력 발표와 동시에 최신 모델 미스트랄 라지도 출시했습니다. 전과 달리 오픈소스로 공개하지 않았고, 모델을 자체 플랫폼(la Plateforme)과 MS 클라우드 애저(Azure)에서만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때문에 닫혀버린 오픈AI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우려 섞인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죠. 둘 사이 관계가 단순 협력이 아닌 지분 전환형 투자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전직 장관을 앞세운 AI 스타트업의 로비
하지만 무엇보다 미스트랄이 ‘유럽 챔피언 (European Champion)’이라는 수식어 아래 EU AI 법 제정 과정에 행사한 영향력 때문에 EU 정치인들이 뿔난 상태입니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는 발빠르게 이들간의 협력을 투자로 볼지, 그에 따라 반독점법 위반 소지는 없는지 조사를 검토하기로 했죠.
EU AI 법은 현재 최종 합의에 도달해서 형식적인 의결 절차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과거 AI 윤리 레터에서 요약한 내용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세부 조항에 대한 협상이 이뤄졌죠. 특히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유럽 기업의 경쟁력 약화 우려를 근거로 생성형 AI와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 규제 완화를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뒤에는 프랑스의 전직 디지털 국무장관 세드릭 오(Cedric O)가 공동창업자로 합류한 미스트랄의 활발한 로비가 있었다고 하고요.
누가 이득을 보는가 (Cui bono)
미스트랄이 AI 스타트업임과 동시에 유럽의 AI 선두 주자로서 오픈AI와 같은 미국 기업과 경쟁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대규모 클라우드 인프라를 갖춘 빅테크 기업과 손잡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EU AI 법 협상과 두 기업 간의 협력 논의 시점을 끼워맞추며 미스트랄이 MS의 AI 규제 로비 앞잡이 역할을 했다는 해석은 너무 앞서나갔다는 비판도 있죠. 미스트랄 CEO 역시 회사는 여전히 오픈소스를 지향하며, MS의 소규모 투자로 인해 독립적인 유럽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잃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갈수록 AI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규제 도입을 앞두고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 역시 주권, 국가 경쟁력과 같은 주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죠.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외의 AI 업계에서는 ‘소버린 (Sovereign) AI’라는 용어가 유행입니다. 자국 언어와 문화를 학습한 모델의 필요성, 데이터 주권 등을 근거로 다른 국가, 특히 미국의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AI를 개발하여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결을 같이하는 개념이죠.
그러나 미스트랄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소버린 AI’라는 키워드 역시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인 로비 또는 소비자 마케팅 목적으로 쓰이는 전략의 일환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누가 이득을 보는가 (Cui bono)?’ 오랜 격언이지만 AI 규제를 고민하는 우리 역시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질문입니다.
누가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나?
by. 🤖아침
2021년 열린 NAVER AI NOW라는 컨퍼런스가 있습니다. 네이버는 여기서 하이퍼클로바 LLM을 공개하며, 한국어에 특화된 기술로 ‘AI 주권’을 확보하겠다 선언합니다. 국내 대표 테크기업인 네이버가 이전까지 진행한 연구 성과를 갈무리하고, 현재로 이어지는 AI 상용화 추세에 박차를 가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행사입니다.
테크기업이 주최하는 기술 컨퍼런스는 조직의 성취와 기술력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또한 비전과 문화를 제시하며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채용을 홍보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세를 과시하는 행사입니다. 연사로 발표하는 인물 역시 주요 구성원 및 협력 파트너가 대부분입니다. 연사들의 면모는 곧 해당 기업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밀접하다는 얘기도 됩니다.
AI NOW 컨퍼런스 발표자는 17명. 웹사이트에서 명단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이 있습니다. 17명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습니다. 네이버가 AI 주권을 선언하는 자리에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술 업계에서 여성의 과소대표는 꾸준히 지속된 문제입니다. 다음번에 말씀드리겠지만, AI 관련 행사에 여성이 적게 등장하는 것이 네이버만의 특징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별일 아닌 것은 아닙니다. AI 분야의 젠더편향은 업계 안에서의 격차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편향된 기술제품 개발로 이어지거나 성착취물/성폭력 문제 대응 역량을 저해하는 등 훨씬 폭넓은 사회적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AI 제품의 파급력이 갈 수록 커지는 지금 더욱 시급한 사안입니다.
컨퍼런스가 업계 종사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자리라고 할 때, 한국 AI 업계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어느 정도 들리고 있을까요? 다음번에는 더 많은 행사를 살펴보고, 나아가 AI 기술과 젠더에 관련해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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