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윤리 이중첩자의 변(辯)

사람을 위한 AI, 기업이 아닌 사회가 만듭니다.

AI 윤리 이중첩자의 변(辯)
딥러닝은 범용 인공지능의 중요한 구성 요소일지는 몰라도 유일한 구성 요소는 아니다.

—마이클 울드리지 (김의석 역), <괄호로 만든 세계>

AI 윤리 이중첩자의 변(辯)

by 🤔어쪈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글을 주로 쓰다가 올해 회고를 적으려니 무척 어색한 기분이 듭니다. 눈 감았다 뜨면 뉴스가 넘쳐나는 분야라 그동안 소재 걱정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요. 음,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앞서 필진 세 분이 인사드린 2주 사이에 있었던 일들 중 연말이 아니었다면 AI 윤리 레터에서 분명 다뤘을 내용부터 간략히 적어봅니다.

  • EU AI 법이 끝내 제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EU의 입법 최종 단계인 3자 협상 절차 직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반기를 들었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3일간의 마라톤 회의를 거쳐 타협안이 도출되었다고 하네요.
    • AI 윤리 레터에서도 EU AI 법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 구글에서 소문만 무성하던 새로운 대형 멀티모달 모델 Gemini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Gemini의 다양한 능력을 선보이기 위해 공개한 영상이 조작 수준으로 편집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크게 망신을 사고 말았습니다.

후, 이제서야 제대로 인사를 드릴 수 있겠어요. 안녕하세요, 어쪈입니다.

언젠가부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순 없다는 진리를 절실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때문에 종종 제 일에 우선순위를 매겨보곤 해요. AI 윤리 레터 작성은 올해 내내 상위권이었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프로젝트입니다.

날씨 화창하던 어느 봄날, 함께 책 읽던 다섯 명이 모여 소식지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AI 윤리 레터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서야 발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려 2주만에 1호를 발송했죠. 매주 발행 역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실행력 뛰어난 동료들 덕분에 오늘까지 100개가 넘는 소식을 함께 전하고 있네요.

첫 회의 때 당시 제가 남긴 노트에는 다섯 글자가 유독 강조되어 있습니다.

“일단 해보자!”
(노트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려다가, 제 글씨를 아무도 못 알아볼 것 같아 관뒀습니다.)

제 딴엔 회사를 다닐수록 제 글을 쓰기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느끼던 터라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인데요. 이제는 달력 앱에 AI 윤리 레터 작성 일정의 반복 설정이 ‘무한’으로 되어있습니다.

출처: MBC. 추억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제목이 원래 <무모한도전>이었던 것 아시나요? 그냥 그렇다고요…

저는 회사에서 AI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개발이 아닌 모든 일을 담당한다는 기획자로 일하고 있어요. 동시에 저를 포함한 AI 윤리 레터 필진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AI 기업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MZ세대 일원으로서 회사와 저 자신을 분리하는 게 어렵지 않아야 하는데, 항상 모순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자기 의심이 들기도 해요.

친한 친구가 이런 저를 두고 ‘이중첩자’ 같다고 하길래, 뭔가 멋있다는 생각에 맞장구를 쳤더랬죠. 영화에서 본 이중첩자들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던 것 같지만… 아무렴 어때요. AI 윤리 레터 마스코트인 앵무새 이모지로 유명한 논문의 저자들도 구글 직원이었죠. 제가 존경하는 이중첩자 선배님들입니다.

출처: ACM. AI 윤리 레터의 첫 인물 카드 주인공 팀닛 게브루와 회사와의 마찰로 가명을 기재한 슈마가렛 슈미첼이 쓴 논문.

AI 윤리 이중첩자는 회사에서 AI 시스템 및 서비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관찰하고, 더 나아가 설계와 개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느 기업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법규 준수나 시장 수요를 비롯한 기업의 AI가 충족해야하는 다양한 요건들을 반영하는 역할을 하죠. 이중첩자가 회사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면 AI 윤리 레터에서 다룬 주제들 역시 요건에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게 문제죠.

이 때 시민으로서의 AI 윤리 이중첩자가 빛을 발합니다. 기업이 AI에 반영해야하는 요건을 다른 말로 하면 사회가 기업에 던지는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기업의 강점과 약점, 돌아가는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이중첩자는 이 질문들을 훨씬 날카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질문이 날카로울수록 기업들은 AI 윤리를 더 깊게 고민할 수 밖에 없겠죠. 이중첩자들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 회사가 사회의 질문들에 답하도록 도우면서 궁극적으로 더 나은 AI, 말뿐이 아닌 정말 사람을 위한 AI가 만들어지도록 돕습니다.

어떤가요? AI 윤리 이중첩자를 중심으로 설명하다보니 미처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AI 윤리 레터가 왜 거버넌스와 정책 문제를 빠뜨리지 않고 항상 다루는지 역시 설명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AI 윤리 레터 구독자분들 중에도 분명 이중첩자가 있겠지만 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이중첩자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AI 윤리 이중첩자의 변이면서 동시에 함께 할 동료를 구하는 공고이기도 합니다.

한 해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도 잘 부탁드립니다.